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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가치를 보다: 언어가 선물한 삶
작성자 : 강대신문
작성일 : 2025-10-10 08:48:30
조회 :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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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년월일 : 제1424호 10월13일
발행일 : 2025-10-13

언어의 가치를 보다: 언어가 선물한 삶


생산성과 효율성을 맹목적으로 좇는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큰 특징 중 하나인 ‘언어’는 인문학적 탐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소통 방식을 모색하며 만들어낸 ‘피진어’와, 그것이 세대를 거쳐 모국어로 정착한 ‘크리올어’는 언어가 인간의 문화와 일상적 삶에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우리 대학 문화인류학과 김형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진어와 크리올어가 발전하는 과정을 알아보고, 더 나아가 언어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조명해 봤다.

언어가 만든 새로운 사고 방식
언어는 인간이 음성이나 문자를 활용해 의사소통하는 도구이다. 동물도 위험을 알리거나 먹이를 발견했을 때 울음소리나 신호로 소통할 수 있지만, 인간은 언어와 상징을 활용해 문화나 종교와 같은 추상적 개념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상징이란 특정 대상의 물리적·자연적 속성과 관계없이 그것에 부여된 의미를 뜻하며, ‘평화’라는 추상적 개념을 ‘흰 비둘기’라는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 그 예이다.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수적이다. 이에 우리 대학 문화인류학과 김형준 교수는 “인간은 언어 덕분에 추상적 관념을 만들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주변 세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능력을 얻게 됐다.”라고 전했다.
인간은 언어 체계가 완전히 발달하기 이전에도 몸짓, 표정, 단순화된 어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이는 언어가 인간에게 얼마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서로 다른 언어권 사람들이 접촉하면서 새로운 소통 방식을 모색한 결과, ‘피진어’라는 독특한 언어가 탄생했다.

피진어의 특성과 크리올어로의 전환
피진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만든 혼성 언어로, 문법과 어휘, 발음이 단순하며 주로 식민지 사회나 다민족 노동 현장에서 사용된다.
피진어가 장기간 사용돼 모국어로 정착하면 ‘크리올어’로 발전한다. 크리올어는 보다 정교한 문법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시제와 인칭·수 일치가 체계화되고 어휘가 확장돼 다양한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하다. 이에 김 교수는 “크리올어로 발전하려면 피진어 화자 수가 증가하고, 하나의 집단에서 의사소통 언어로 정착하며, 교역을 넘어 사회 여러 영역에서 이용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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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과들루프 생트앤 인근 주거지역에 위치한 과들루프 크리올어 표지판으로, ‘속도를 줄이세요. 아이들이 여기서 놀고 있어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크리올어는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영어, 네덜란드어 등 다른 유럽 언어와 아프리카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아이티 크리올어, 언어의 힘
대표적 크리올어인 아이티 크리올어는 17~18세기 프랑스의 식민 지배 과정에서 형성됐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이주된 노예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상황에서 프랑스어 기반의 피진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티 크리올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공동체 의식과 저항의 상징이 됐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진행된 라발라스 운동은 ‘대홍수’를 뜻하는 크리올어에서 유래됐다. 이는 군부 독재와 국제적 착취 구조에 맞서 민중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겠다는 열망을 ‘홍수처럼 모든 억압을 쓸어낸다’는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한때 아이티 크리올어는 비표준어로 차별받았지만, 현재는 프랑스어와 함께 공식 언어로 인정돼 교육·행정·정치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수업 언어로 활용되며, 관공서 안내문과 정치 연설에서도 활용된다. 지난 2022년에는 외국어 학습 앱 ‘듀오링고’에 아이티 크리올어 과정이 개설되면서 국제적 학습 언어로도 자리 잡았다. 이처럼 언어는 공동체에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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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4년 미국 플로리다의 한 렌터카 업체는 고객 응대 카운터에서 아이티 크리올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아이티 크리올어를 주요 이민 언어로 인정해, 선거 안내문이나 공공기관 자료에 크리올어 번역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소멸되는 언어, 사라지는 정체성
그러나 모든 피진어가 크리올어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정착되지 못한 언어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거나, 영향력이 강력한 지배 언어에 흡수된다. 언어의 소멸은 단순히 말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언어가 담고 있던 공동체의 역사·문화·생활방식까지 함께 사라져 소규모 집단의 정체성과 전통 보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언어 소멸의 문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수는 7,000여 개로, 그중 2,680여 개의 언어가 소멸 위험에 처해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위험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230개의 언어가 영구히 사라졌다. 소멸 위험 언어로 지정된 언어 중 146개 언어는 해당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전 세계에 채 10명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김 교수는 “국가의 공용어 사용을 강제하면 크리올어와 같은 소수 언어의 영향력이 약화되거나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소규모 집단의 언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소수 언어에 대한 특정 국가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언어의 가치, 보존의 필요성
언어는 인간이 창조해 내기도 하지만, 소멸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언어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피진어와 크리올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한 공동체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세계화 시대에 효율성과 통일성이 강조되면서 언어의 소멸은 점점 더 가속되고 있다. 언어의 사라짐은 곧 그 언어가 지니고 있던 해당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는 문화적 단절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의 삶과 긴밀히 연결된 언어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다양한 언어의 보존을 통해 각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나가야 한다.

※ 기사 작성에 도움 주신 김형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장다현 기자
<wkdekgus614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