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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빛나는 별 하나, 병원 속 금잔화 한 송이 탄생 99주년 윤동주를 헤다
작성자 : 강대신문사 문화부
작성일 : 2016-08-05 16:05:19
조회 : 344
호년월일 : 제1232호 04월 04일
발행일 : 2016-04-04

어둠 속에 빛나는 별 하나, 병원 속 금잔화 한 송이 탄생 99주년 윤동주를 헤다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울림과 감동의 시인

 윤동주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시인이다. 윤동 주는 1984년 이부키 고우의 번역으로 처 음 알려졌다. 이후 이바라키누히코라는 일본의 한 시인으로부터 소개되고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윤동주가 사랑했던 일본 의 거리에 시비를 건립하자는 모임이 생 겼을 정도이다. 또한 윤동주에 대한 연구가 오히려 일본에서 활발히 이루어질 정 도로 윤동주는 더 이상 우리민족만의 시 인이 아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시인으 로서 사랑받고 있다. 일본 중년여성들의 경우 윤동주의 시가 주는 울림과 감성에 매료되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실제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를 십여 년 지속한 일본의 한 중년여성은 윤동주 이야기만 하면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고 “나는 욘사마가 아니라 윤사마의 골수팬” 이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이다. 이러한 윤동주 시인이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 한다. 이에 윤동주를 기념하기 위해 기일 하루 뒤인 지난 2월 17일에 ‘동주’라는 영 화가 개봉했고 지난달 20일부터 27일까 지는 ‘윤동주, 달을 쏘다’라는 뮤지컬이 공연됐다. 이처럼 윤동주는 인기 있는 콘텐 츠로 새롭게 재창작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윤동주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어디 에 있을까?

  기자는 윤동주의 시를 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는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눈에 들어오는 강인하고 순수한 시 구절은 마 음 한편을 벅차오르게 한다.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했고 누구보다도 애절했기에 그의 시는 어느 곳에 있든 사람들의 심금 을 울리는 것이다. 또 윤동주의 대부분의 시에는 인간 내면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는 ‘참회록’, ‘자화상’ 등의 시를 보면 확실 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드(본능)와 에고 (자아), 슈퍼에고(초자아)가 공존하는 세 계가 윤동주 시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드 (본능), 에고(자아), 슈퍼에고(초자아)가 명확하지 않으며 작은 결정조차 내리지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이러한 현대 인들이 윤동주라는 인물과 시를 보며 자 신에 대해 확인하게 된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윤동주의 시를 읽게 되는 것이다. 아 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규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윤동주의 삶은 단순한 울림 과 감동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내면 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지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의견 들도 있다. 위대한 면모들만 볼 수 있고 그 러한 부분들만 강조되는 다른 위인들보 다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윤 동주의 인간적이고 순수한 면모가 사람 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우리는 윤동주를 보며 과거의 부끄러웠던 기억들을 떠올리 기도 하고 미래의 소망들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윤동주는 사색하지 않는 현대 인들에게 고독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시인인 것이다.

 

문학과 조국에 대한 사랑

 윤동주의 육필원고 한편에는 이런 낙서들이 있다. ‘시란?’, ‘힘 ’ , ‘비애’ 시인의 문학에 대한 고민과 조국에 대한 안타까 운 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한 윤동 주는 언제나 반성하는 시인이었다. 학자 들은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있을 때 가 가장 행복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는 한다. 이는 그 당시 연희전문학교가 기 독교 학교로 일본의 탄압이 비교적 적 어, 한국어와 사상에 대한 자유가 어느 정도는 보장됐기 때문이다. 그러한 곳에 서 윤동주는 저명한 한국어 학자인 최 현배, 이양하의 도움으로 일본어가 아 닌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탄압은 연희전문학교까지 뻗치
게 되고 결국 윤동주는 절필을 하게 된 다. 그 후 희망 한 조각을 다시금 발견 한 듯이 나타난 시가 1941년 5월에 창 작한 ‘십자가’라는 시이다. 이후 1941년 11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시 ‘서시’ 와 ‘별헤는 밤’, ‘간’이 창작된다. 1941년 11월은 강인하지만 순수함을 담고 있는 윤동주 시의 특색이 가장 잘 살아나 있 는 작품들이 탄생한 해인 것이다. 그러 나 윤동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해는 1942년이다. 1942년은 윤동주가 조국 을 떠나 릿쿄대학에서 유학을 한 해이 기도 하지만 그전에 윤동주가 히라누마 도오쥬우로 창씨를 개명한 해이기도 하 다. 윤동주는 지식을 통해 조국을 독립 시키고자 창씨개명을 했지만 그러한 자 신의 행위를 참지 못하고 그 후 계속해 서 부끄러움에 가득 찬 시를 쓰게 된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느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은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해소 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한국말 사용 이 금지되었는데도 편지에 한글로 쓴 시 를 끼워 보내는 등의 행위를 윤동주 시 인은 끊임없이 지속했고 이러한 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가 바로 ‘쉽게 쓰여 진 시’이다. 윤동주가 죽음을 맞이한 것 은 광복 6개월 전인 1945년 2월 16일이 다. 1943년 윤동주는 조선인 징병제를 역으로 이용해 일본군의 군사기술로 조 선을 독립시키고자 했다는 혐의를 받는 다. 이후 특고경찰(특별고등경찰의 다른 말로 1911년에 일제가 정치 운동이나 사상운동을 단속하기 위하여 둔 경찰) 에게 붙잡히게 되고 결국 옥중에서 죽 음을 맞이하게 된다.

 

별은 어둠속에서 빛나고 부끄러움을 인지하는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별 헤는 밤’, ‘서시’, ‘참회록’, ‘자화상’, 윤동주를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기자 는 ‘병원’이라는 작품을 가장 먼저 떠올 린다. ‘병원’이 윤동주가 자신의 시집 이 름으로 점찍어둔 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은 현재 사회의 병폐와 맞닿아 있 는 부분이 있어 계속해서 보게 되는 시 이다. 윤동주는 그 당시의 사회를 병원 이라는 장소로 규정한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환자 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병 원에 늙은 의사가 있고 그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이 는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아프고 또 아 프지만 어떠한 것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사회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한 연륜 있는 의사조차도 알 수 없는 병 을 지닌 사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도 그곳에는 가슴에 금잔화를 꽂은 여 인이 있고 그러한 여인을 바라보며 젊은 이들의 회복을 바라는 시인이 있다. 조 국이 존재하지 않아 계속해서 환자들이 생겨나는 병원에서 한 송이의 금잔화라 는 희망을 제시하고 싶어 하는 시인의 면모가 드러난다. 이는 현재 사회와도 연관 시킬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 밤은 시에서 부정적인 이미지 로 사용된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에서 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이미지는 부정 적인 것이 아니다. ‘돌아와 보는 밤’을 예 로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윤동주는 세상 으로부터 돌아와 좁은 방에 들어오고 불을 끈다. 불을 끄는 이유는 불을 켜두 면 낮을 연장시켜 피로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밤에 불을 켜는 행위는 희망 을 찾는 행위로서 사용된다. 그러나 시 대적 상황과 결부시켰을 때 윤동주에게 낮이라는 시간이 오히려 고통의 시간이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국을 빼앗긴 상 황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조국 을 밝히는 태양이 야속하기만 했을 것 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둠은 윤동주에 게 위안의 공간을 만들어준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보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을 가려준 어둠이 얼마나 포근하게 느껴졌을지. 실제로 ‘돌아오는 밤’에서 도 방안과 같이 어두운 창밖이 진짜 세 상 같다고 이야기 한다. 윤동주에게 조 국은 가장 중요한 세계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러한 조국을 빼앗긴 시점에서 아 침햇살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는 해가진 밤이라 는 공간을 사색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 다. 보통의 경우는 해가 뜨려고 하는 새벽녘이나 해가 지려고 하는 저녁녘에 사색을 하고 반성을 한다. 그러나 윤동주 는 밤이라는 시간에 거울을 닦고 밤을 지새우며 운다. 이 모든 것은 조국을 사 랑한 윤동주가 조국의 아픈 모습을 비 추는 조명마저도 고통스러워했음을 보 여주는 부분이다. 윤동주의 시는 우리에게 사색과 반성 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준다. 이러한 윤 동주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구 조는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고통, 희망찬 미래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구조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이유는 그 당시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윤 동주의 애국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 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 있는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의 추억을 잊지 말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의 실수를 부끄러워하고 사색할 줄 알아야 한다. 윤동주는 그것 을 알았던 것이다. 노을이 지는 저녁녘에 일기를 쓰던 기자는 윤동주의 시를 읽은 후로 밤이라는 시간에 일기를 쓴다. 시에서 나타난 밤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처음 시작 한 행위가 이제는 일상이 된 것이다. 우 리는 윤동주가 바라본 것처럼 밤이라 는 공간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어둠 이 없으면 별은 빛나지 않고 밤을 맞이 하지 않으면 꿈이라는 내면세계로 몸을 던지지 못한다. 새벽과 저녁이 고독한 느낌을 준다면 밤이 주는 느낌은 쓸쓸 함과 고요함이다. 밤이 주는 쓸쓸함과 고요함은 때로는 고독보다 더 좋은 사색 의 양식이 된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일제 강점기의 고통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인 간 내면의 성장 방법까지 이야기해주고 있다. 윤동주처럼 자신을 사색하고 부끄 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 부끄러움과 사색 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요즘 현대인들은 자신의 치부와 실수를 감추 기에만 급급하지 반성하려 하지는 않는 다. 누군가의 차가운 눈길과 사회적 시 선이 무서워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 나 윤동주는 도망가지 않았다. 적극적 인 독립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도 용기 있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야기 했다. 때문에 기자는 윤동주의 문학을 단순히 부끄러움의 미학으로만 받아들 이지 않는다. 윤동주의 시를 보며 그러 한 부분들을 배운다면 그 사람은 윤동주의 시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이를 이루기 위해 오 늘 밤에도 윤동주의 시를 낭독하며 일기를 쓸 것이다.                       

 

이우정 기자<minerva000@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