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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시인을만나다]-신승근(3)-차라리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볼 수만은 없을까 (본문)
작성자 : 강대신문사 문화부
작성일 : 2017-11-28 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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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년월일 : 제1268호 2017년 11월27일
발행일 :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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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볼 수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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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옥 명예교수 (불어불문학과)

 

 

신승근 시인은 시집 언젠가는 저 산의 문을 열고에 있는 시 누추한, 그러나 행복했던에서, “기대인 벽조차 흐물흐물/ 등뼈 사이로 스며드는 저녁/ 흥건히 젖은 시간 위에 엎드려,/ 그리운 것들은 다/ 저 바람 속에 얹어두고/ , 오랫동안/ 이대로 있어도 좋겠다./ 누추한, 그러나 행복한 생애였다고/ 말할 그날에도/ 천천히 흘러가는 햇살 속이라면/ , 느릿느릿 걷고 또/ 걸어가겠다만이라고 이승에서 살아갈 남아있는 날들의 모습을 귀띔한다. 그리고 예의 시인의 말에서는 어느 날, 돌아가 함께 할 시골집에서 문살에 창호지를 다 발라 놓고 저녁 빛이 어떤 색깔일까, 바라본 적이 있다. 기댄 벽조차 등뼈 사이로 흐물흐물 스며드는 저녁이었다. 저녁 햇살이 늦은 걸음으로 이제 막 살문 위를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저녁 빛처럼, 남은 생애를 느릿느릿 걷고 또 걸어가 보았으면이라고 이를 다시 다짐한다.

그리운 풀들의 여러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딴청 부리기를 말했는데, 동시에 혹시 이 시편들이 김종삼 시인에게 헌정하는 시들은 아닐까 속짐작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산의 문을 열고를 읽으면서는 신승근 시인의 삶과 시의 세계가 김종삼 시인의 삶과 시의 세계친연親緣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따져보았다. 신승근 시인은 김종삼이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시를 썼다.

 

1) 성남동城南洞의 풍경이 삐끗했다.//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 그대의 영혼이/ 첨탑 위에서/ 낙수落水로 졌다.// 절룩이는 마음들이 모여/ 날아가는 푸른 깃의/ 그대를/ 보았다 한다.(그리운 풀들, 71)

 

2) 나 그때 성남동에 있었다./ 거리가 환희 보이는 창가였다./ 가로수조차 땀에 젖는/

여름이었다. 그날/ 김종삼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구겨진 채/ 의자 속에 담겨 있었다./ 기다리던 친구는 끝내 오지 않았다./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했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책방에서도 김종삼은 떠난 지 오래라고 했다.(언젠가는 저 산의 문을 열고, 97)

 

1)의 둘째 연 괄호 안의 시행들은 김종삼 시인의 나남김종삼전집의 세 번째 라산스카의 마지막 4행인데 시 전문을 여기에 적는다.

 

바로크 시대 음악을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 다가올 때마다/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김종삼 전집, 나남, 205)

 

김종삼 시인은 같은 제목으로 여러 편의 시를 썼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쓴 제목이 라산스카로 여섯 편의 시를 썼다(신철규 시인에 따르면 8편이다). ‘라산스카는 미국의 러시아 유태인계 가수 헐더 라산스카(Hulda Lashanska, 1893-1974)의 이름인데, 중요한 것은 이들 시가 모두 폐허 또는 죽음의 이미지를 담고 있고, 그 절망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이 소프라노 가수의 흐리면서도 표현력이 높은 음색처럼 깊은 세계 하나가 어려 있다는 것이다.”(황현산). 라산스카와 마찬가지로 신 시인의 시, 두 편의 김종삼도 김종삼 시인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시인데 그렇다고 해서 추모시라고만 할 수는 없다. 두 편의 시 모두가 김종삼 시인을 짙게 대상화해서 쓴 시라기보다는 시인 김종삼을 통해 초점은 시인/화자에게 맞춰져 있는 시이다.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나는 이 시구에, 죄책감/죄의식과는 다른 그리고 그를 넘어선 수치심을 김종삼 시인이 감정적/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이 잘 담겨있다고 본다. 이 시구를 그대로 빌려온 신승근 시인도 이 수치심의 본색을 쉽게 알아챘을 텐데, 아름다움을 보고 새, 짐승들은 비켜서는데 머뭇거림 없이 그 곳에 앉아버리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수치감’(욕망), “죽은 나무인데 어떠냐며/ 아무렇지도 않게들 도끼를 들이밉니다만/ 나는 아직도 나무들의 생애를/ 잘 모르겠습니다며 갖는 인간들에 대한 부끄러움’(나무의 목숨)이 그 반증이겠다. 이 맥락에서 두 편의 김종삼을 읽는다.

1)은 김종삼 시인의 죽음을 알리고 있기는 하나 성남동의 풍경이 삐끗했다”, “절룩이는 마음들은 시인/화자의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2)에서는 김종삼 시인의 죽음을 연락 받은 때가 가로수조차 땀에 젖는/ 여름인데, 현실에서 김종삼 시인은 128, 겨울에 죽었다. 시에서 이를 수정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것은 김종삼 시인의 죽음이 시인/화자에게는 의자에 깊게 주저앉을 만큼 충격이고 슬픈 일이었다는 점이다. “그날/ 김종삼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구겨진 채/ 의자 속에 담겨 있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를 잊었는데 말이다(“책방에서도 김종삼은 떠난 지 오래라고 했다”).

 

1988년의 시집 그리운 풀들2001년의 시집 언젠가는 저 산의 문을 열고, 삼십대 중반과 오십에 접어드는 나이에 신 시인은 어째서 이미 작고한 시인을, 거의 잊힌 시인을 반복해서 기억의 장으로 끌어냈을까? 신승근 시인으로서는 김종삼 시인에 대한 오마주를 넘어 김종삼 시인을 통해 신승근 시인 자신의 시의 세계, 시학을 다잡은 것 아닐까.

 

다음은 한국일보1981123일치 기사의 일부이다.

 

“[김종삼 시인은] 우리나라의 많은 시인들이 도저히 양립시킬 수 없는 두 가지 일을 양립시키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도 윤택해야 한다’, ‘시도 좋아야 한다는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지려는 시인들을 그는 어리석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김종삼 시인신승근 시인으로 바꾼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신승근 시인이 김종삼이라는 이름으로 두 편의 시를 쓴 까닭도 나의 믿음과 다를 게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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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 시인의 최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