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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시인을만나다]-최계선(3)-“온 천지가 다 놀이터이니” (본문)
작성자 : 강대신문사 문화부
작성일 : 2018-03-25 21: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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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년월일 : 제1273호 2018년 3월26일
발행일 :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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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계선(3)

"온 천지가 다 놀이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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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옥 명예교수(불어불문학과)

 

《두산백과》에 따르면, ‘딱정벌레목 물방개과’의 곤충으로 몸길이 35~40mm인 물방개는 “몸은 넓적한 타원형이며 몸 빛깔은 검은색인데 초록색을 띤다. 딱지날개(굳은날개)는 바깥가두리를 따라 나가 넓은 황갈색 띠가 있고 3줄의 점무늬로 이루어진 줄이 있다. 성충은 연중 볼 수 있으며, 특히 봄부터 여름까지 많이 활동하고 불빛에 날아들기도 한다. 성충과 유충이 모두 육식성으로 물속의 작은 동물이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어린 시절 벼가 자라 허리춤까지 오기 전, 논에 들어가면 미꾸라지, 우렁과 함께 지천인 게 물방개였다. 유난히 윤기가 나는 물방개의 ‘딱지날개’ 또는 ‘굳은 날개’(이 단단한 껍데기가 일종의 날개인지는 이번에 알았다), 검은 바탕이 초록색을 띠기 때문이었을 텐데, 보기 좋아서였을까, 그 반짝거림에 홀려 한마리라도 더 잡으려 논바닥을 꽤 뒤지며 다녔다. 우렁과 달리 물방개를 삶거나 구워 먹은 기억은 없다. 그리고 이 시를 보면 물방개는 날아다니는데 내가 날고 있는 물방개를 본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날고 있는 물방개, 그런 그림이 내 머리 속에는 없다. ‘물속을 날고 하늘 속을 헤엄친다’ 그리고 밤이 되면 “풀잎에 눕”는 물방개, 딱딱한 ‘굳은 날개’와 한껏 자유로운 움직임이, 어긋나듯 어울리며, 동물시의 묘미를 유감없이 살리고 있다. 물방개가 육식성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지독하게 가물어 / 보따리 몇 개로 다 쌀 수 있는 살림들을 둘러메고 / 야밤에 마을을 떠나던 식구들, / 어둠 속에서 그들을 더듬는다. / 버려진 이 굴 속에 나만 남겨졌나.”(《두더지》 전문)
비어만 가는 곳간과 쌓여만 가는 빚더미에 야반도주하는 이웃들의 참담한 모습을 ‘두더지’에 연결시키다니 내게는 의외이다. 땅속을 거침없이 파며 전진하는 두더지, 그로 인해 흔들리듯, 무너지듯 움직이는 땅의 표면은 경천동지할 지진의 미니어처 못지않다. 시인에게서와 달리 내게 두더지는 굴속에 홀로 남겨져 외로워하는게 아니라 자기 영역을 넓히려 정신없는 탐험가를 닮았다.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 내복 훌렁 뒤집어 벗고 / 재봉질 결 따라 샅샅이 //구들장 윗목에서 밤마다 / 엄지손톱으로 짓뭉기는 / 어머니의 설움.
*이는 살색이지만 내복 색깔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고 한다. ‘홀아비 삼년에 이가서말’, 정갈하지 않으면 더 꼬인다.
(《이》 전문)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이’ 하면 떠오르는 군대 등 집단생활 숙소에서 벌어지는 한겨울의 흔하디흔한 풍경. 긁적긁적, 더이상은 가려움을 참을 수 없다. 단체로 내복을 벗어젖히고 이 잡기 행사가 한창이다. 내복에 “재봉질 결 따라” 수도 없이 다닥다닥한 이들, 하나하나 손톱으로 짓뭉기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아 화로나 난로 불로 가 불 위에서 내복을 타닥타닥 턴다. 우수수 불로 떨어지는 이들, 치지직치지직, 불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노리끼리한 냄새를 남긴 채.
가렵기로 하면 ‘벼룩’을 뺄 수 없다. 아폴리네르의 《벼》 전문이다(아폴리네르의 ‘동물시’들을 읽는 방식은 최계선의 시 읽기와는 결이 다르다).
“벼룩도, 친구도, 애인마저도, / 우릴 사랑하는 것들은 어찌 그리 잔인한가! / 우리네 모든 피들은 그들을 위해 흐르지. /사랑받는다는 인간은 불행하지.”
아폴리네르는, 날 행복하게 해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친구든 애인이든, 벼룩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벼룩은 흡혈귀의 미니어처, 사랑하는 사람은 흡혈귀, 사랑받는 사람의 피를 먹고 산다. 〈사랑받는 사람〉은 누구이고 〈사랑받지 못하는사람〉은 누구인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한꺼번에 고통을 받고 사랑받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두고 그 고통을 나눠 받는다”(황현산). 〈사랑하는 사람the lover〉과〈사랑받는 사람be loved〉. 사랑하는 사람은 곧 고통을 주는 사람이다. 카슨 맥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을 읽는 방식에 익숙해있지만 그럼에도, 최계선 시인의 시를 읽는 방식이 나는 더 재미있다.
“해 떨어져야 들어오는 / 흙투성이 막내. / 온 천지가 다 놀이터이니.”
(《땅강아지》 전문)
“읽는 사람을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하여 아늑한 행복감에 젖게 해 준 최계선 시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고 정현종 시인은 말씀하셨다. 내가 덧붙이는 말이다. 〈미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