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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 시인을 만나다]-한승태(2) 쇠나드리 바람분교의 책 읽는 소녀
작성자 : 강대신문사 문화부
작성일 : 2018-04-01 16:36:51
조회 :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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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년월일 : 제1274호 2018년 4월 2일
발행일 : 2018-04-02

●강원대 시인을 만나다 - 한승태(2)

 

쇠나드리 바람분교의 책 읽는 소녀

 

정승옥 명예교수.jpg 344X219

바람분교
조롱고개 넘어 샛말

내린천에 몸 섞는 방동약수 건너

쉬엄쉬엄 쇠나드리 바람분교

노는 아이 하나 없는 하루 종일

운동장엔 책 읽는 소녀 혼자

고적하다 아이들보다 웃자란 망초꽃이 새들을 불러 모아 와, 하고 몰려다녀도

석고의 책장은 넘어가지 않는다

딱딱한 글자를 삼키려는지

친구들의 돌아오는 발꿈치를 읽으려는지

종이 울리지 않아도 꼬박꼬박 아침 해와 등교했다

하교하는 분교

독서를 즐기는 저 소녀는
나뭇잎을 읽고
꽃을 읽고

성큼 붉어지는 하늘마저 읽는다

철봉대에 촘촘히 짜 내려가는

땅거미

빈 걸상에 앉은 바람이 책가방을 싸고

교문 밖에서 산나리와 패랭이가 꼬드겨도

낮에 읽은 구절에 어둠이 한 겹 덮일 뿐 눈이 동그란 새들마저 하나둘 하교하고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처음처럼 스러 지는 폐교

소녀는 마침내 별빛 한 장을 넘긴다
(한승태, 《바람분교》, 천년의시작, 2017, 46-47면)

 

“격자무늬 쇠살문은 벽을 굳게 잠 그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 은 정방형의 총안銃眼을/ 좌에서 우 로 위에서 아래로/ 입 벌린 사랑처 럼 줄줄이 뚫어놓았다”. ‘그림자놀 이’를 〈사랑의 이중성〉과 연결시켜, 시인이 만들어낸 깊은 여운이 남는 〈연인 2〉의 시구를 곱씹으며, 그의 첫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바람분 교〉를 풀어본다. ‘조롱고개, 샛말, 내린천, 방동약 수 ’ , 문명의 때가 덜 탄 지명들을 지 나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소들 이 바람을 타고 툭하면 나들이 나가 는 마을 ‘쇠나드리’에 있던 또는 흔 적만은 그대로 남아있는 ‘분교’, 오 죽 바람이 셌으면 ‘바람분교’라 불렀 을까, 운동장에서는 석고로 만든 한 소녀가 책을 읽고 있다. 그와 함께 노는 동무들은 ‘꽃’과 ‘새들’이고 ‘책’ 을 들고 있지만 그가 읽는 것은 ‘나 뭇잎’, ‘꽃’, 그리고 “성큼 붉어지는 하 늘”, 노을‘마저’이다. 이미 학교 문을 나선  ‘산나리’와 ‘패랭이’가 나오라 고 ‘꼬드기고’, 종일을 함께 놀던 ‘새 들’도 ‘하교’했지만 소녀는 이제 ‘밤공 부 ’ , 시쳇말로 ‘야자夜自’를 시작한다. ‘별빛’을 읽는다. ‘바람분교’의 등하교는 어김없이 ‘해’와 함께이니 ‘소녀’는 낮이면 해와 함께 하고 하교 후 시 간, 밤이면 ‘별 ’과 함께 한다. 강원도 인제군 진동면에 실재하 는 한 폐교(쇠나드리 분교였을까)의 모습을 시인은 자연과 문명의 갈등 관계의 맥락 위에서 독자에게 보여 주지 않는다. 〈바람분교〉의 공간과 이미지는 한승태 시인의 시세계/시 정신의 기원이며 현주소이고 앞날이다. 시인 자신의 말이다. “골짜기를 들 어서면 만나는 낯익은 이름들, 어슬 렁거리는 바람, 오히려 햇살로 꽉 찬 폐교, 우우 몰려다니는 새들, 친구 들을 하나씩 불러 모으는 종소리, 비었지만 너무도 풍만한 내 과거를 보았다.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인 햇살, 햇살의 글 읽는 소리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온다.” 이 시에는 시 전체의 음색과 충돌 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폐교’이다. 이 표현을 시인이 쓰지 않았어도 ‘바 람분교’가 폐교라는 사실은 시를 두 번만 읽으면 알 수 있다. 독자가 시 를 읽으며 ‘분교’의 풍경을 그려보고 이제는 문을 닫은 흔하디흔했던 분 교, 말하자면 ‘폐교’라는 말을 떠올리고 그것이 시인에게 그리고 우리 에게 무엇인지 독자 스스로 따져볼 기회를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시 전체의 맥락 덕분에 ‘폐교’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가 ‘스러져’ 별 문 제가 아니긴 하지만. 〈바람분교〉와 함께 시인의 시세계 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가 〈오후 한 시〉이다. 전문을 읽는다.
강이 흐르고 한낮이 흐른다

어느새 공단에서 나온 사내가 서 있고

야금야금 그림자 먹는 강변을 따라

 

햇살은 강 건너 강아지풀 앞에 몸을 숙이고

배 터진 소파를 삼키는 갈퀴덩굴로 더 집요하다

강안江岸에는 개구리와 배추흰나비와 개구리밥과 골풀

사마귀 달팽이 물방개 노란점나나니 나 호리병벌

그리고 애기부들과 개쑥과 조밥나물 이 뒤엉켜

바람의 길목마다 집을 짓는

가시염낭거미의 오후가 푸짐하다

 

굴뚝 그림자가 오후의 그물을 걷어 올리고

송장메뚜기는 사내 키를 넘어 다니는데 막 부화한 날도래가 날개를 말리고 밤의 허기를 키우고 있다

(〈오후 한 시〉 전문)

이 시의 경우, 둘째 연만 보면, 최승호의 《반딧불 보호구역》(뿔, 2009)을 연상시킬 만큼 〈야생의 세 계〉로 풍성하지만 시인이 각 연에 하나씩 배치한 시어, ‘공단’, ‘배 터진 소파’, ‘굴뚝’이 〈바람분교〉의 ‘폐교’와 달리 의미의 파장이 제법 커, 시의 공간을 〈지금, 여기〉에 묶어놓는다. 달리 말해보자. ‘공단’, ‘배 터진 소파’, ‘굴뚝’이 아니라면 둘째 연의 〈야생 의 세계〉의 풍성함이 ‘쉽게’ 시 전편 을 감싸고 〈바람분교〉가 있는 같은 공간에 시의 세계를 펼쳐놓을 수 있 었을 것이다.(계속)